한동안 영화를 잘 안 보다가 다시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다시 보게 된 첫 영화가 마침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2001)'이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샤이닝' 등으로 스탠리 큐브릭을 알고는 있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그의 작품을 제대로 본 적은 없었다.
보고 싶은 영화 목록에 큐브릭 작품이 몇 번 올라오긴 했지만 왜인지 항상 최종까지는 올라가지 못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최근 큐브릭 영화를 보고 난 후, 큐브릭 영화만의 특이한 소재, 영화와 딱 어울리는 음악, 미장센에 나의 취향을 저격당해 버렸다.
그리고 특유의 완벽주의적 성향까지.. 내 스타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살짝 미친 사람을 좋아했다. 무언가에 미쳐서 미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똑똑한 미친 사람.
'시계태엽 오렌지(1971)' 리뷰를 쓰는 지금까지 큐브릭의 영화를 총 세편 봤는데 스탠리 큐브릭이 딱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왜 이제야 봤을까 왜 나는 학생 때부터 SF 영화만을 고집해 왔을까 지난날을 반성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시계태엽 오렌지' 리뷰를 써본다.
줄거리 및 주관적인 해석 (스포 주의)
시계태엽 오렌지의 주인공 알렉스
특이하게 눈 밑에 속눈썹을 붙이고 있다
(GD가 알렉스를 따라한 스타일링을 한 적이 있어 보자마자 GD가 생각남ㅋㅋ)
알렉스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마약을 하고,
길거리에 누워 노래를 부르는 노인을 이유 없이 폭행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척 거짓말을 한 뒤 남의 집에 들어가
집주인 부부를 폭행하고 강간하며,
심지어는 함께 다니는 친구들에게까지
폭행과 막말을 하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한다.
한마디로 갱생이 불가능한 범죄자다.
하지만 이런 알렉스도 의외로 감성적인 면모가 있는데,
늘 베토벤 음악을 듣는 베토벤 마니아다.
매번 베토벤 음반을 사러 음반 가게에 가고, 방에도 베토벤 사진을 걸어둔다
영화를 보다 보면 여러 장면에서 70년대 영화 같지 않은
팝아트적인 세련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알렉스 방은 요새 유행하는 카페 인테리어라고 해도 믿을 수준...
그러던 어느 날,
알렉스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친구들은
알렉스를 큰 범죄의 길로 유인한 뒤 배신한다.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살인을 저지른 알렉스는
그대로 현행범으로 경찰에 잡혀가게 된다.
이제 감옥에서 오랜 시간 갇혀 지내야 하는 알렉스
사실 알렉스 같은 범죄자는 진작에 사회로부터 격리가 필요했다.
감옥생활을 하는 알렉스는 예의 바르고 반성하는 척 행동하며,
교도소 내의 신부님과 친하게 지낸다.
그런 알렉스의 모습을 보며 신부님은 알렉스가 교화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알렉스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언뜻 성경을 열심히 읽고 있는 것 같지만
성경 속 전쟁과 폭력이 나오는 구절을 읽으며
상상을 통해 자신의 억제된 폭력성을 해소하는 중이다.
하루빨리 감옥에서 나가고 싶던 알렉스에게
신부님으로부터 새 장관이 추진하는
범죄자 교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2주 만에 교도소를 나갈 수 있다는 소식이 전달되고,
바로 프로젝트에 지원한 알렉스는 프로젝트의 대표로 참여하게 된다.
이제 가장 유명한 장면이자 가장 충격적이고 기괴한 장면이 나왔다.
새로운 장관이 추진한 범죄자 교화 프로젝트는 바로 이것이다.
'의학적인' 교화 프로젝트로 홍보가 되었는데,
실험자가 눈을 감지 못하게 앉혀놓고 폭력, 전쟁, 선정적인 영상을 틀어준 뒤
약물을 투여해 실험자의 속을 울렁거리게 만든다.
(이때 우연하게도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베토벤의 음악이 나온다.)
이를 계속 반복하면 어느새 실험자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것들에 속이 울렁거리는 반응을 하도록 몸이 세뇌당하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인간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이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특정 의도대로 만들어버리는 것.
교화를 목적으로 알렉스를 기계처럼 프로그래밍했다.
2주간 의학적인 교화 프로젝트를 마친 알렉스는
고위 관계자들 앞에서 프로젝트에 완전히 세뇌된 모습을 보여준 뒤 석방된다.
이 과정은 마치 서커스 쇼처럼 진행되었다.
석방 후,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알렉스.
부모님이 반겨주실 거라 기대했지만
알렉스가 집을 비운 사이 부모님은 다른 청년에게 알렉스의 방을 내주었다.
심지어 부모님은 사고만 치던 알렉스보다
새로 들어온 청년을 더 아들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알렉스의 집 장면에서도 미장센이 돋보인다.
그런 집을 나와 거리를 헤매던 중
예전에 자신이 이유 없이 폭행했던 노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알렉스를 기억한 노인은 이를 되갚아준다.
폭행을 당하면서도 알렉스는
세뇌로 인해 속이 울렁거려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다.
다행히도 경찰이 폭행당하는 알렉스를 발견하고 이를 제지해 주었는데,
하필 그 경찰이 또 알렉스와 함께 다녔던 친구들이다.
자신이 함부로 대하고 윽박지르던 그 친구들.
경찰이 된 친구들은 알렉스를 알아보곤, 산으로 데리고 가 물고문한다.
하지만 역시 세뇌를 당한 알렉스는 지금도 아무런 반항을 할 수 없다.
알렉스의 몸은 자기에게 내려지는 폭행, 폭력에도 구역감을 느낄 뿐이다.
이 때부터 영화 관람자는
자유의지를 빼앗겨 반항조차 못하고 속절없이 당하고만 있는 알렉스의 모습을 보며
어쩐지 불쾌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정당성의 문제를 떠나 우선적으로 느껴지는 이 거부감과 불쾌함은 뭘까
물고문을 당한 뒤 숲 속에 버려진 알렉스는
근처에 있는 집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 집은 어떤 작가의 집이었는데,
여기가 또 하필.. 과거 알렉스가 절도하고 부부를 폭행했던 집이다.
처음엔 알렉스를 기억하지 못하고, 안쓰러운 알렉스를 챙겨주던 집주인은
과거 자신의 집에 들어와 범죄를 저지를 때 불렀던 노래인
'Singing in the Rain'을 부르는 알렉스의 목소리를 듣고 알렉스를 기억해 낸다
이에 분노한 집주인은 알렉스를 옥상 방에 가둬둔 뒤,
세뇌 당시 영상 배경으로 쓰여 의도치 않게 함께 세뇌되어 버린 베토벤 음악을 틀어준다.
가장 좋아했던 노래였지만 베토벤의 음악이 나오자 알렉스는 다시 참을 수 없는 구역감에 시달리고..
결국 참지 못한 알렉스는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만다.
알렉스의 교화 프로젝트는 사실 시작부터 정치적으로 말이 많았는데,
대표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알렉스가 교화 프로젝트 부작용(?)으로
죽을 뻔한 사건까지 일어나자, 현재 정권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알렉스를 달래기 위해 장관이 찾아오고,
(물론 정치적인 쇼를 위해)
알렉스의 세뇌당한 정신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주는 치료를 해준다.
그 후, 알렉스는 다시 치료되었다.
이제 다시 구역감 없이 폭력적인 성향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고,
그가 좋아하던 베토벤 음악 또한 이제 마음껏 들을 수 있다.
수많은 기자들이 치료된 알렉스를 촬영하러 왔다.
축하의 의미로 베토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커다란 스피커도 선물해 준다.
교화조차 어려웠던 문제의 살인범이 한순간에 국가에게 희생당한 피해자가 되었다.
" I was cured all right! "
다시 폭력적인 성향을 되찾은 알렉스는 본인이 치료되었다고 외치며 영화가 끝난다.
알렉스는 과연 치료된 것일까
국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폭력성에 무조건적인 거부반응을 느끼던 알렉스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비인간적으로 폭력적인 알렉스
둘 중 누가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성공적인 교화의 정의는 무엇일지,
진정한 선, 진정한 악은 구분이 가능할지,
국가는 어디까지 개인에게 개입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것이 참 많아진다
다소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장면이 많긴 하지만
영화에 주제에 대해선 생각해 볼 점이 많으므로 추천하는 영화다
더불어 스탠리 큐브릭의 영상미까지 감상할 수 있는..!
시계태엽 오렌지 보는 곳
넷플릭스 & 왓챠
넷플릭스나 왓챠에는 없다..
넷플릭스는 아쉽게도 2020년까지는 있었으나 2021년부터 시계태엽 오렌지가 사라졌다.
나는 2021년 1월 초에 시계태엽 오렌지를 찾아 헤맸었어서 무척 아쉬웠다...
네이버 시리즈 온
시계태엽 오렌지가 당장 너무 보고 싶었던 나는 네이버 시리즈 온에서 대여해 감상했다.
대여 2일간 1300원 / 구매 (구매 후 5년) 5000원
사진 출처 : 네이버 시계태엽 오렌지 영화 스틸컷, 아시아 경제 '시계태엽 오렌지'에 대한 오해와 진실, 네이버 캐스트 '시계태엽 오렌지'
